님만의 일을 꿈꿔본 적 있나요? 누구에게나 피난처는 필요합니다. 어지럽고 불확실한 상황과 무수한 이해로 얽혀있는 관계망 속에서 떨어져 나와 내가 나 자신으로 오롯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초연한 공간이요. 어느 날은 퇴근길에 좋아하는 바에 들러 홀가분한 마음으로 술 한 잔을 기울입니다. 정신과 자세는 흐트러지기 마련이지만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술을 마시면 평소엔 흐릿해 보이던 사실이 되려 분명해지기도 합니다. 무엇이 분명해지냐고요? 글쎄요. 때로는 진심이, 때로는 관계가, 때로는 나 자신과 내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의 기울기가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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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현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자’라는 모토 아래 밀도 있는 공간들을 선보이고 있는 서비스업 회사. ‘현현하다’라는 말의 의미와 같이 현묘하고 심오하면서도, 일편 밝고 분명한 목소리들이 공간을 구석구석 채운다. F&B, 주거 공간, 문화 공간 등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공간을 기획, 운영, 컨설팅하고 있으며 최근 현현의 컨설팅 프로젝트 『리퀴드유니온』을 ‘자신의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로 재정의 하기도 했다. 서비스업의 현실과 어려움을 알기에, 합리적이면서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쉼 없이 모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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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의 『독일주택』부터 창덕궁 앞 『텅』까지, 현현이 만든 공간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만 그 공간을 만드는 주체는 늘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현재: 많은 사람이 안성탕면을 좋아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거나 관심 없는 것처럼 좋은 서비스나 제품으로만 선택되고 싶었어요. 마치 블라인드 테스트로 선택된 와인처럼 말이죠. 회사 구성원들 중에 아웃사이더와 내향인이 많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느티: 저는 현현에서 7년 차 근무 중인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게 저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고 느껴요. 현재의 ‘라면’ 비유가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표현 방식만 다를 뿐 기본이 되는 생각은 서로 동기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이제는 현현의 구성원들끼리 어느 정도 ‘모이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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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현의 웹사이트에는 ‘밝고 분명하게, 깊고 심오하게’라는 문장이 현현의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어요. 이러한 기조는 어떻게 탄생한 걸까요?
현재: 개인적으로 조직에 대한 오래된 불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21세기고, 엄청나게 많은 기술들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이고 불투명하게 운영되는 조직이 많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정확하고 합리적으로만 일해도 올라갈 수 있는 경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처음 회사를 만들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기반으로 이 조직이 밝고 분명하기를 바랐어요. 그러면서도 '현현하다'라는 동사처럼 쉽게 정의될 수 없는 현묘함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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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가게 『인생의 단맛』 칵테일 이름은 피식 웃기기도 하고, 문학적이기도 해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주도에 다녀와서 모슬포 블루라는 생애 첫 창의적 칵테일을 만들었어요.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칵테일 이름만 100개 정도 지었습니다. 영업 첫날에는 두 가지만 주문이 가능했지만 점차 레시피들이 생겼어요. 오랫동안 문학을 좋아했는데, 무용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제 삶을 구원한 놀라운 경험이었죠. 『인생의 단맛』은 제가 가지고 있었던, 제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었어요. 이곳에 오는 그 누구도 서운하게 보내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성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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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현이 만든 공간들은 어딘지 ‘현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탁, 차분하고 고요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공간을 브랜딩 하거나 기획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부분이 있나요?
현재: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장소성과 고유성입니다.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하면 '이곳에 무엇이 있으면 자연스럽고 어울릴까? 무엇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라는 고민으로 시작해요. ‘말하기’보다는 ‘응답하기’ 쪽에 가까운 것 같네요.
그렇다면 현현이 고른 장소와 공간의 분위기는 현현의 취향이라고 봐도 무방할까요? 공간마다 일맥상통하는 결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현재: 사실 취향이라기보다는 만든 이의 ‘성향’이 느껴지는 공간이 저한테 더 영감을 주는 편이에요. 상업 공간에 한해서 말해 본다면 취향이라는 말은 소비자적인 느낌이 들거든요. 요즘은 주변에 가게들이 정말 많잖아요. 프랜차이즈가 아닌 가게들은 어느 정도 변별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공간을 만들거나 소개하는 방법에서는 또 다른 프랜차이즈 같다고도 느껴요. 공간에 현현의 취향을 담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장소 선정이나 공간에서 저희의 성향이 드러나긴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종이라고 치면, 한지 같은 장소를 선택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에는 일정한 톤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 현현 다운 분위기가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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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충무로에 『필로소피 라운지』를 열기도 했죠. 이곳에는 어떤 장소성이 있을까요?
느티: 『필로소피 라운지』는 원래 인쇄소였던 공간이에요. 처음 보러 갔을 때 맛집이 즐비한 거리에서 골목 하나 들어갔더니 오래된 인쇄소가 모여 있더라고요. 노포와 새로운 가게, 공장들이 섞여있는 을지로의 ‘바이브’가 재밌었어요. 공간에 들어서보니 넓고 네모반듯한 모양이었고, 단이 하나 있어 근사했죠. 자연스럽게 ‘라운지’라는 이름이 떠올라 이야기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기본적으로는 늘 이렇게 시작되는 것 같아요. ‘이 장소에 뭐가 있으면 좋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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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필로소피 라운지는 저희 집 거실 이름이기도 해요. 혼자 살 때 처음 투룸으로 이사를 가게 됐는데 하나는 침실, 하나는 옷방으로 사용하고 나니까 거실이 비는 거예요. 그래서 의자 하나 놓고 ‘여기서는 사색만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보통 가족들이 함께 살면 거실은 주로 공용 공간으로 사용하잖아요. 근데 저에게 목적이 불분명한 비어있는 공간이 처음으로 생긴 거죠. 그래서 의자를 놓고, 조명이랑 테이블도 놓고, 오디오도 두고 했는데 나중에는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을 초대해서 술을 마시고 하다가 필로소피 라운지라는 이름을 떠올렸어요. 집 와이파이 이름도 ‘Philosophy Lounge’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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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소로 성북동의 『헌술방』을 골랐어요. 현현이 쌓아온 성향의 집결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현재: 코로나 당시에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었어요. 회사를 운영하면 매출도 중요하지만 구성원의 에너지도 중요하잖아요. 무기력하게만 있을 수는 없어서 사무실로 쓰던 5평 공간을 헌책과 이야기가 있는 와인 바틀 숍으로 만들었는데 그게 『헌술방』의 시작이에요. 동료들과 함께 헌책을 구하러 다니고, 당근마켓에서 가구를 사고, 각자 와인에 대해서 글을 쓰고. 당시에는 거의 매거진 에디터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그때의 매출이 코로나를 견디는데 큰 도움이 됐거나 했던 건 아니지만 정말 순수하고 즐겁게 몰입했어요. 팀워크도 좋아지고 각자의 재능도 발견하게 됐던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책을 좋아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는 지금의 성북동으로 옮겨서 확장되어 운영 중이에요. 보는 순간 헌술방에 꼭 맞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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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현재: 저는 원래 술을 안 좋아했어요. 안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취한 사람을 보는 것도 힘들어했죠. 그저 술을 ‘만드는 행위’가 즐거워서 시작했다가 지금은 자주 마셔요. 근래에는 술이 저한테 주던 긍정성이 다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그러다 최근에 장욱진의 『강가의 아틀리에』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분이 표현한 술은 어쩐지 긍정적으로 느껴졌어요. 정말 술에 진심인 분이셨거든요. 어떻게 설명했냐면, 자신의 일과 삶은 거의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시간과 휴식 시간밖에 없데요. 취미가 없는 거죠. 그런데 휴식은 자신에게 곧 ‘술’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일을 하는 시간은 ‘선명한 시간’이고, 휴식하는 시간은 ‘모호해지는 시간’이라고 표현하죠. 그 말이 너무 와닿아서 ‘좀 더 마셔봐야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느티: 편하게 말해보면 술을 마시면 솔직해져요. 이완되죠. 하지만 술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무기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세모예요. 최근에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도 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요. 술이 창의성에 좋은 도구로 사용되고, 술을 즐기는 창작자들도 많지만 다른 방식을 택해 볼 수도 있다고요. 영화 『어나더 라운드』도 술의 긍정적인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다루죠. 술이 주는 즐거움은 여전히 있는데, 술이 없어도 좋은 시간과 대화가 좀 더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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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관련된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다면···?
’맨정신이 마약’(『인생의 단맛』 무알콜 칵테일 이름), ‘나쁜 와인을 마시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혜화동 『수도원』 코스터에 독일어로 쓰여 있는 문장)
저는 요즘 자영업이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모로요. 그렇지만 주변에서는 쉽게 ‘나도 회사 그만두고 카페나 하나 차릴까?’라고 말하기도 하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말려야 할까요?
현재: 하라 마라 이야기하는 편은 아니에요. 다만 창업 관련해서 사람들과 대화 나누다 보면 ‘아지트’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는 조언을 하긴 하죠. ‘아지트를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라고요. 택시 기사님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손님을 내 차에 ‘태워준’ 것처럼 생각하신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저는 아지트가 그런 혐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장 생활은 고성과자가 아니어도 어떻게든 다닐 수 있지만 서비스업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유지할 수가 없다는 점이 어렵습니다. 빠르게 변하고 경쟁이 매우 치열해요. 저는 겸업에 대한 것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데, 간혹 어떤 분들은 일정 시간만 출근하는 오토 매장을 꿈꾸지만 저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창업을 하는 분이 있다면 첫 번째 가게는 꼭 '사장님이 주 6일 이상 일하는 가게'였으면 좋겠다고 조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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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과 경험을 토대로 컨설팅 프로젝트 『리퀴드유니온』을 만들기도 했죠. 술로 시작해서 술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강물 같은 이름이에요.
현재: 『리퀴드유니온』은 첫 가게를 운영하던 당시에 직원들이랑 쓰던 단톡방 이름이었어요. 이 일을 하면서 우리가 이음새 없는 물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거든요. 사실 저는 예전부터 ‘컨설팅’이라는 말에 묘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다른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창업 컨설팅 프로젝트라고 불렀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자신의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재정의했죠. 저는 사람들이 지금 있는 조직이 마음에 안 들거나 혹은 더 이상 가고 싶은 조직이 없다면 결국 자기 일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중 하나가 당연히 서비스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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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현을 말할 때 ‘동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워크숍 사진만 봐도 단단한 연대감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현재: 작은 회사는 좋은 동료가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내세울 만한 게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회사의 별명을 '분위기 메이커'라고 지었는데 분위기의 완성도 결국 사람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자유라는 가치가 너무 중요해서, 반대로 다른 동료들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싶지 않아요. 느티랑도 7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한번은 ‘현현에서 왜 일하냐, 어떤 점이 좋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 느티가 ‘자기대로 살면서 일할 수 있어서 좋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하나의 단서가 됐던 말이죠. 조직에 희망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그런 면일 거라고 생각해요.
느티: 현재는 저에게 ‘부하 직원은 필요 없고, 우리는 동료로 일하자’라는 말을 자주 해요. 동료들과 여러모로 가까운 편인 것 같아요. 선을 넘나들거나 친구 같다는 뜻은 아니고요. 친구 관계는 우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기본으로 하지만, 일은 부정적인 소통도 꽤 있잖아요. 더 어려운 상황을 많이 만나는데, 함께 해결하며 깊은 이해와 존중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워크숍 등 기회가 있을 때는 놀이도 하고, 새로운 면모도 살필 수 있고요. 저는 동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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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현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참상인의 길’이라는 표현이 있죠. 그래서 결국, 참상인이란 무엇일까요?
현재: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다른 원고를 쓰면서 처음으로 정의를 해보게 됐는데요. 참상인이란, 직업윤리를 갖고 있으며,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일하면서, 손님을 기적으로 생각하고, 이윤을 남기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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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참상인의 길은 걸을만하신가요?
현재: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뒤돌아봤을 때 그런 길을 걸어온 여정이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안팎의 구독자들에게 딱 한 가지 술을 소개해 본다면?
‘그, 나, 저, 나’ 인생의 단맛에서 판매하는 높은 도수의 창의적 칵테일이에요. 마시다가 술에 취해서 ‘그나저나’라는 단어에 쉼표를 찍어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마침 인터뷰를 하는 곳이 ‘안팎’이어서 떠올랐습니다. 언어가 분열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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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안팎』은 어떠셨나요? 크든 작든 『안팎』은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안팎』에서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안팎』은 언제나 여러분의 관심을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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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라픽스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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