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평생의 짝사랑을 만난 적 있나요? 평생의 짝사랑을 만난 적이 있나요? 우연히 만난 대상이 때로는 내 삶을 통째로 바꾸기도, 그 자체로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대상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평소와 다르게 눈이 커지고 말이 빨라지고 얼굴이 상기되기도 하죠. 어떨 때는 꿈에조차 나와 우리를 괴롭힙니다. 정말로 좋아한다는 마음이 우리를 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져본 마음들을 떠올려 보며, 언제 어디에서 그들이 찾아왔는지 되짚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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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이영준은 기계비평가이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다. 인간보다 기계를 더 사랑하는 그는 정교하고 육중한 기계들을 보러 다니는 것이 인생의 낙이자 업이다. 일상생활 주변에 있는 재봉틀에서부터 첨단 제트엔진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구조와 재료로 돼 있으면서 뭔가 작동하는 물건에는 다 관심이 많다. 원래 사진 비평가였던 그는 기계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을 스스로 설명해보고자 기계비평을 업으로 삼게 됐다. 그 결과물로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2006), 『페가서스 10000마일』 (2012), 『조춘만의 중공업』 (공저, 2014), 『우주 감각: NASA 57년의 이미지들』(2016),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공저, 2017),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공저, 2017) 같은 저서를 썼다. 또한 사진 비평에 대한 책(『비평의 눈초리』, 2008)과 이미지 비평에 대한 책(『이미지 비평의 광명세상』, 2012)도 썼다.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1999), 『서양식 공간예절』(2007), 『xyZ City』(2010), 2010 서울사진축제, 『김한용—소비자의 탄생』(2011), 『우주생활』(2015)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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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비평이란 무엇인가요?
기계의 메커니즘에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용수철을 의미하는 스프링을 예시로 들어볼게요. 영어에서 스프링(spring)이라는 말은 봄을 뜻하죠. 샘도 영어로 스프링입니다. 이 세 가지 동음이의어엔 공통점이 있어요. ‘솟아오른다’. 용수철은 솟아오르고, 봄에 만물은 땅에서 솟아오르고, 샘에서는 물이 솟아오르죠.
요즘은 스프링이 좋아져서 탄성이 유지되는데 제가 어렸을 때 모나미 볼펜은 쓰다 보면 탄성이 약해져서 뻑뻑해졌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스프링을 연구한 거예요. 굉장히 하찮은 물건이지만 아무 쇠로나 스프링을 못 만든단 말이죠. 연철은 탄성이 없어서 강철로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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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다 보면 흔히 강철의 ‘강’이 강할 강(强)인 줄 알지만 사실 아닙니다. 포항 제철소에 가면 제련을 거쳐 쇠를 만드는 과정이 있는데, 단련된 이 쇠가 강철 강(鋼)이에요. 연철의 ‘연’도 연할 연(軟)인 줄 알지만 납 연(鉛)을 쓰죠. 이런 식으로 스프링 하나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엉뚱한 이야기나 상상력을 펼치다 보면 신화적 이야기로 흘러갈 수 있지만, 그보다 사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압축하려 해요. 왜냐하면 요즘 철학 분야에서 신유물론을 논의하면서 사람들이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지만 사실 사물은 옛날부터 사람 사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옛날부터 사물 자체에 굉장히 많은 특성과 이야기가 있어서 그것을 파헤치자고 생각해 왔어요. 그리고 기계비평은 기계 사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이 존재는 무엇이길래 이것과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라고 질문하며 존재론적 이야기를 펼쳐내는 겁니다.
영준 님이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 처음 경험한 기계에 대해 알려주세요.
스스로 처음 경험한 건 모형 비행기 엔진 콕스 049(Cox 0.49)예요. 구조는 단순하지만 버스나 자동차의 엔진과 똑같아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놀면서 처음 접했어요. 우리가 타는 차의 엔진은 공기를 흡입해서 압축하고, 폭발시켜서 배출하는 4사이클(four-cycle)로 구성돼 있어요. 4행정 엔진(four-stroke engine)이라고도 하는데, 하여튼 모형 비행기 엔진은 2사이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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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달리 그리 복잡한 엔진이 아니라서 연료 분사 장치가 따로 없어요. 너무 단순한 게 피스톤이 올라갈 때 공기를 빨아올리고 기화된 연료가 피스톤의 틈 사이로 빨려서 같이 올라가죠. 그러니까 공기와 연료가 같이 빨려 올라가요. 그러면 밸브가 열리면서 공기가 들어오고 폭발한 다음에 배기 밸브가 열리면 그때 빠져나가요. 이 엔진 연료의 주성분은 벤젠, 메탄올, 피마자유인데 여기서 피마자유가 윤활유 역할을 해요. 이 연료가 타면서 배기가스가 나오는데 그 냄새가 참 독특했던 기억이 나요. 아직도 친구들과 가끔 만나면 이 애기를 하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냄새와 다른 냄새가 났어요.
지금까지 관찰하고 비평한 기계 중 영준 님을 가장 흥분시킨 것은 무엇이었나요? 언젠가 꼭 직접 보고 싶은 기계가 있나요?
제 평생 짝사랑은 디젤기관차입니다. 디젤기관차를 실제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마어마한 매연을 뿜어서 지금은 퇴출 단계에 있어요. 훨씬 일찍 퇴출될 뻔했지만 디젤기관차의 장점이 하나 있어요.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전기가 끊겨도 기차는 다녀야 하잖아요. 우리나라 철도 대부분은 전철화되어 있는데 디젤은 전기와 관계없이 다닐 수 있으니까 몇 대는 남겨두고 있지만 앞으로 그것도 없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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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평생의 짝사랑 디젤기관차에도 특정한 모델이 있어요. 철도 매니아들은 그냥 특대형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모델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도 무궁화호를 끌고 있지만 이제 점점 없어지겠죠. 정식 명칭은 ‘GMC EMD GT26CW’.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서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하는데, 고등학생 때 본 신문 하단에 이 기차의 광고가 딱 실린 거예요. 그때 본 순간 이 모델 이름을 바로 외웠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기관차라서 그냥 그 순간 외워버렸어요. GMC는 General Motors Company, EMD는 Electro-Motive Division (현재는 Electro-Motive Diesel), GT26은 모델 넘버입니다. 이 기관차가 저를 정말 흥분시켜요. 이제는 폐차하고 다 뜯어내서 그 고철을 팔거든요. 세워둘 데도 없지만 그 고철을 어떻게든 얻는 게 제 꿈이에요.
가장 최근에 찍은 사진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최종병기 활」에 나왔던 화살인데, 애기살을 샀어요. 아주 짧은 화살인데 쏘면 사람 정도는 간단히 관통하는 화살이에요. 우리나라에 만드는 분이 따로 계신데 그분이 직접 판매하셔서 한 개에 3만 원 주고 샀어요. 놀라운 점은 이 애기살이 400미터를 날아간다는 겁니다. 그리고 짧아서 그냥 쏘는 게 아니라 통아라는 대나무 통에 받쳐서 쏴야 해요. 재미있는 건 상대방은 통아가 없으니 적의 애기살을 주워도 쏠 수가 없어요. 임진왜란 때 이걸 사용했다고 하는데 아마 조총보다 살상력이 높았을 겁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도 총의 위력이 약해 총에 맞아 즉사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보다도 치료를 받지 못해서 상처가 썩어서 죽었다고 해요. 임진왜란은 그전에 일어났으니 조총의 위력이 약한 때였을 거예요. 하지만 총은 일단 저격 소리가 크니까 적에게 공포심을 심어줬을 테고, 또 당시엔 연기도 많이 났어요. 하지만 애기살만큼 멀리 날아가지는 못했을 거예요. 문제는 애기살을 배우기 위해선 평생이 걸리고 총은 5분만에 배울 수 있다는 큰 차이점입니다.
이렇게 저는 보는 것들이 전부 재밌고, 지루할 틈이 없어요. 인생에서 모든 게 흥미롭고 모든 이미지가 재밌어요. 이건 또 얼마 전에 핸드폰으로 슈퍼문을 찍었어요. 저는 애써 흥분을 감추려 했는데 SNS나 뉴스에서는 슈퍼문을 봤다고 난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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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써 흥분을 감추려 하셨어요?
남들 따라하기 싫어서 그저 초연한 척했습니다. 평론가도 예술가 못지않게 개성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계비평』(워크룸프레스, 2019)에서 기계가 너무 좋아 꿈도 꿨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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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기계비평』(워크룸프레스,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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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돈만 내면 스케줄에 맞춰서 어떤 배든 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폐쇄된 환경인 배가 많이 위험한 곳이 되었어요. 배에 탄 한 사람만 코로나-19에 걸려도 탑승한 사람 전부가 걸릴 수 있어요. 그래서 배를 자주 못 타게 되니까 배 타는 꿈을 삼사일에 한 번씩 꾸곤 했어요. 너무 생생해서 배 갑판에 가면 설계도도 있었고 선원들과 이야기하기도 하는 이런 꿈을 거의 맨날 꿨죠. 그래서 어떻게든 배를 한 번 타보려고 별별 수단을 다 쓰고 있는데, 아직은 잘 안되네요.
어떤 배를 타고 싶나요?
화물선이면 어떤 것이든 좋아요. 여객선도 상관없는데 기계적인 속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객선은 보통 속을 잘 안 보여주지만 화물선은 다 개방해 주거든요. 그리고 사람마다 꾸는 악몽 패턴이 다 다르겠지만 최근 새로 개발된, 진짜 웃겼던 꿈은 아무리 검색을 해도 핸드폰이 안 찾아주는 꿈이었어요. 핸드폰이 악몽의 도구가 된 거죠. 그만큼 생활 속에 완전히 깊이 침투해 있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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