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도시, 어떻게 살아가고 계시나요? “휴, 다시는 도시에 가지 않을 테야!”
우화 『시골쥐와 도시쥐』 속 시골쥐는 도시쥐를 만나고 온 뒤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이 말이 이제는 어느새 우리 입가를 맴돌고 있습니다. 높디높은 건물들, 어딜 가도 넘쳐나는 인파는 우리를 종종 숨 막히게 하지요.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결국 도시에서의 삶이란 벼랑을 쌓아 올리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도시와 사람은 기어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요. 그러니 어쩔 수 없죠. 언젠간 떠날 수도 있는, 혹은 영원히 머무를 수도 있는 이 도시에서의 삶을 다정히 잘 돌보는 수밖에요.
1. 함민복, 「옥탑방」,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12), 28~29 |
|
|
이경준
뉴욕 기반의 작가 이경준은 도시 관찰자이자, 일상을 하나의 패턴으로 포착하는 창작자다. 대학원 시절 새로운 환경과 학업에 지쳐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는 높은 곳에서 우연히 내려다본 도시의 모습에서 새로움을 느꼈다.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본 세상은 거대한 유기체와 같았고, 이러한 시선의 전환은 그의 단조롭던 삶에 자극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던 그는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형성했다. 국내 유명 뮤지션 ‘죠지’, ‘구원찬’ 등과의 앨범 커버 작업, 글로벌 패션 브랜드 ‘Helmut Lang’ 과의 콜라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현재 개인전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그라운드시소 센트럴, 2023)을 진행하고 있다. |
|
|
작가님은 도시의 무늬를 담아내는 사람이라고도 생각이 드는데, 도시의 무늬는 어떤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하나요?
우리는 살기 위해 도시를 계속 발전시키고 있잖아요. 그래서 도시를 조감하듯 유심히 바라보면 그런 면이 두드러지는 지형물들이 쉽게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도로 위 표지판, 횡단보도 그리고 안내선이 어떻게 보면 도시의 껍데기가 아닐까요? 도시의 피부 같은 느낌. 그 위로 우리가 움직이면서 어떤 모양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이 모인 모습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그게 바로 무늬가 되는 것 같아요. |
|
|
© GROUNDSEESAW © KYUNGJUN LEE |
|
|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 중 사람 외에 가장 자주 관찰하는 것이 있나요?
아무래도 빛을 자주 그리고 더 면밀히 봐요. 시간대에 따라서 빛은 계속 변화하니까 빛에 따라 건물이나 공원이 머금는 색상도 달라요. 공원의 사람들도 빛을 받으면서 오묘한 색감을 띠기도 하고요. 그래서 빛을 유심히 보게 돼요.
뉴욕 같은 경우 건물이 정말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데, 건물과 건물이 서로 선이 어긋나지 않은 채 오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그런 순간이 있어요.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면면이 바뀌는데, 그 각도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를 더하는 것 같아요. |
|
|
The Layers, 2023, New York |
In Between, 2023, New York |
|
|
유체이탈하듯이 위에서 바라보면 지금 처한 상황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조언을 들었는데, 작가님 사진을 보면 그 시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막연한 불안과 관계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그렇듯 늘 하잖아요. 저도 그랬는데, 언젠가 사진을 찍다가 높이 올라갈 일이 생겼어요.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 사이마다 일정한 간격이 있더라고요.
|
|
|
친한 사람들도 사회적, 심리적 거리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가잖아요. 도시 안에서 제가 가야 할 방향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니 기존의 고민들이 단순해지더라고요.
다 각자만의 길을 가고 누구나 다 고민이 있을 텐데, 저도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더 명확히 그려보고 마음이 정말 원하는 것에 한 번 더 귀 기울이게 됐어요. 물론 그 과정이 빠른 시간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고민 속에서 이룬 창작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
|
|
도시가 밉거나 떠나고 싶은 적도 있나요?
도시의 삶이 때로는 각박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직은 좋아요. 어떻게 보면 도시의 삶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하고 현실적인 부분에 부딪히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또 도시에서 제공하는 공원이나 미술관에 들어서면서 위안을 받기도 해요. 참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아요.
|
|
|
Central Park, 2018, New York |
|
|
그래도 도시가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냥 살고, 살아내요. 재밌는 일을 할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이겨내요. 예전에는 친구들도 자주 만났지만 미국에 오고 나서는 혼자인 경우가 많아요. 친구가 있어도 서로서로 바쁘니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풀어내려고 노력했어요.
요즘은 아침에 공원이나 공원 같은 곳을 산책하는 게 재밌어요. 저는 이렇게 단순히 풀어버리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도시를 떠나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쩌다 여행을 갈 수는 있지만 저나 아내나 도시 생활을 좋아해서 그런지 우리는 언제쯤 휴양지를 제대로 한번 가볼 수 있을지 늘 이야기해요. 휴양지에 가도 반나절 만에 벌써 집에 가고 싶거든요. |
|
|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이방인이라고 자주 느끼나요?
그렇죠. 그렇지만 뉴욕은 이방인의 도시이기도 하고 누가 먼저 왔는지 그 차이일 뿐, 대다수가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거예요. 다만 조금 다른 점은 이우환 선생님이 예전에 본인을 중간자로 느낀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런 순간들을 저도 느껴요. 뉴욕에 산 지 6년이 돼가는데, 아무리 살아내도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이질감 없이 섞이고 스미어 살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래서 그런지 뉴욕에서 끝까지 이방인으로 살게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아요. 서울에도 점점 자주 오지 못하니까 익숙한 것들에서 멀어지는 기분도 들고요.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그 때문인지 작가님의 사진은 도시 속 이방인으로서 도시를 이해하려는 작가님의 어떤 노력처럼 보였어요.
처음에는 이 도시를 잘 모르니까 이해하기 위해서 높은 곳에 올라갔어요. 어떤 때는 헬기를 타고 도시를 돌아보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도시의 패턴을 발견하고 촬영한 일이 도시를 정말로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
|
|
Manhattan, 2021, New York |
Manhattan, 2023, New York |
|
|
도시와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맺으면 좋을까요?
도시가 좋아서 살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어 살 수도 있고 도시 속 사연은 모두 달라요. 그렇더라도 각자 일을 하거나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공간은 결국 도시잖아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펼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온라인으로 의견을 내기도 하고. 온라인이라는 공간도 결국은 사람들이 만든 도시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온라인 공간도 도시에서 얻은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이니까요.
결국 우리가 모두 모여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만큼 도시에게서 좋은 것을 받아내야 하는 것 같아요. 공원 같은 곳에서 자기만의 휴식처를 찾아도 좋고 아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도 좋고요. 물론 그럴 수 있는 공간이나 인프라가 충분히 제공돼야겠죠. 그런 식으로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도시와 사람이 맺어야 할 이상적인 관계가 아닐까 싶어요. |
|
|
Central Park, 2021, New York |
|
|
이번 『안팎』은 어떠셨나요? 크든 작든 『안팎』은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안팎』에서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안팎』은 언제나 여러분의 관심을 기다립니다. |
|
|
안그라픽스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25-15 ⓒ 2023 Ahn Graphics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