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어디서부터 왔울까요? 디자인과 기술의 상호작용은 단순히 도구와 방법론의 변화를 넘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근본적인 변화시킵니다. 자동화와 알고리즘이 일상에 스며든 오늘날, 그래픽 디자인은 기술을 매개로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나아가 그래픽 디자인 교육은 이 변화에 어떻게 조응할 수 있을까요? 디자이너, 개발자, 교육자인 크리스 하마모토는 자신의 고유한 배경에서 비롯한 문화적 틈새를 탐구하며, 실험적인 작업과 교육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을 꾸준히 모색해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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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하마모토
크리스 하마모토(Chris Hamamoto)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디자이너, 개발자, 교육자다. 2024년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서울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친다. 자동화와 알고리즘이 커뮤니케이션과 미학에 미치는 영향, 그래픽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통해 주제에 초점을 맞춘 독립적인 작업을 추구한다.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 워커 아트 센터(Walker Art Center), 홍익대학교, 럿거스 MGSA(Rutgers Mason Gross School of the Arts), 예르바 부에나 예술 센터(Yerba Buena Center for the Arts) 등에서 전시, 출판, 강연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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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아마추어 서울’(Amateur Seoul)에서 출간한 「크리스 하마모토 씨의 일일」에서 처음 ‘크리스 하마모토’라는 이름과 마주한 것 같아요. 이름만으로는 정체를 알기 어려웠죠. 한국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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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조예진 씨 같은 한국인 동기가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의 개인 책장에 프로파간다(Propaganda)에서 펴내는 계간지 『그래픽』(Graphic)을 비롯해 워크룸 프레스, 미디어버스의 단행본과 한국 디자이너들이 만든 다양한 출판물이 꽂혀 있었어요. 그 덕에 한국 그래픽 디자인에 관해 처음 알게 됐죠. 특히 김영나 씨의 『우물우물』이 기억이 나요. 그러다 보니 한국 안팎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만든 결과물이 미국보다 훨씬 더 혁신적이고 도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원을 마치고 몇 년 뒤 중국에서 워크숍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기회다 싶었어요.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한국에 들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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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 편집부, 『그래픽』 23호, 프로파간다, 2012년 7월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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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물로 처음 접한 한국에 실제로 와보니 어땠나요?
길게 머물지는 못했지만, 이때 한국의 시각 문화와 담론을 접했고,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 세계의 출판물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어요. 미국에 돌아간 뒤에도 자연스럽게 한국 그래픽 디자인을 계속 주목하게 됐죠.
2022년 CCA(California College of the Arts)에서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아무리 한국이 매력적이라 해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나요?
한국, 특히 서울에는 수많은 전시, 디자인 스튜디오, 도서전 등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도 많고, 그만큼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캘리포니아에서는 거의 모든 게 기술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까닭에 흥미로운 디자인 활동과 토론은 대개 비공개로 이뤄집니다. 거리에서 디스코드(Discord)나 레딧(Reddit) 사무실의 간판과 마주하는 건 즐거운 경험이지만, 실제로 그곳에 접근하는 건 또 다른 일입니다. 애플(Apple)같이 비밀스러운 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캘리포니아를 사랑하지만, 거기서 일어나는 혁신적이고 의미 있는 디자인 활동은 주로 애플, 테슬라(Tesla), 구글(Google) 등이 이끄는 기술 산업과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훨씬 공개적이라는 점에서 제게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가 훨씬 매력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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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아시아계 혼혈인으로서 아시아에서 그 일원이 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어느 정도는 환상이 있었고, 돌이켜 보면 현실에서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현재로서는 미국이나 유럽의 디자인보다 아시아의 디자인에 관심이 많습니다. 비서구적 관점의 디자인 담론이 어떻게 등장하고 글로벌화될 수 있는지 궁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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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로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마저 디자인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런 욕망을 어떻게 제어하는 편인가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제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이따금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저는 선생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학생들보다 훨씬 부족한 점도 있죠. 그런 만큼 최선을 다해 제 생각을 나누면서 학생들을 ‘있는 그대로’ 대하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때 목표는 학생들의 독특한 관점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거고요. 이런 태도를 취한 뒤로는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돕는 동료라는 느낌이 더 강해졌어요.
학생들이 당신 수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기를 바라나요?
그래픽 디자인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관한 많은 지식과 이론이 필요하죠.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피그마처럼 디자인 도구가 점점 직관적으로 탈바꿈하는 오늘날 그래픽 디자인이야말로 가장 탈기술적인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이때 디자이너에게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는 태도와 본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자신의 태도와 본능에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고 싶어요
이제는 ‘크리스 하마모토’에 관해 이야기해볼까요. 당신은 일본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죠.
어린 시절 제 주변에는 저 같은 와시안(Wasian, 백인과 동양인의 혼혈)이 없었어요. 저는 일본인이나 영국인 가운데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못했죠. 학교를 졸업한 뒤에야 사회에서 여러 와시안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와시안으로서 저와 그들의 경험이 겹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배경이 같다고 해서 무조건 동질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어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죠. 중요한 건 문화와 사회 속에서 저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 게 좋을지 의문을 품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런 배경이 자연스럽게 태도나 작업으로 드러날 것 같아요. 존과 함께 만든 「국기 생성기」처럼요. 그리고 당신 작업에서 드러나는 지역성 또는 국제성의 근원을 찾은 것 같아요.
맞아요. 「국기 생성기」는 국기의 그래픽을 다양한 형태로 분석하고 재조합하는 작업이죠. 콜파 프레스(Colpa Press)에서 펴낼 출판물을 위해 존이 처음 제안했는데, 이제껏 저희가 머문 나라를 바탕으로 국기를 만들었죠. 존은 일본계 하와이 출신으로, 네덜란드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요. 이런 배경은 어떤 면에서 저희를 결속시킵니다. 말 그대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요. 그 뒤 가상의 국가명을 생성하는 「국가명 생성기」를 만들었고, 1년에 한 번 정도는 계속 뭔가 시도해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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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얼마 전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비디오 테이프를 빌리다 토렌트(Torrent)를 접하게 되면서 인터넷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관해 이야기했죠. 참고로 제가 유년 시절 제가 비디오 테이프를 빌리던 곳은 지금 이렇게 바뀌었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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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메커니즘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능에 관심을 두게 됐고, 그렇게 깃허브(Github) 같은 온라인 수정 시스템, 프린터 기술을 통한 감시 메커니즘, 도구에 내재된 편견에 초점을 맞춘 작업으로 구체화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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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생각』(Second Thoughts). 사용자가 마우스를 스크롤하거나 특정 키를 누르면 웹사이트는 콘텐츠가 편집된 과정을 순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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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최근에 진행하는 작업은 없나요?
페데리코 페레즈 빌로로(Federico Pérez Villoro), 그렉 먼로(Gregory Nathan Jinsoo Monroe), 타이거 딩선(Tiger Dingsun)과 함께 진행하는 ‘보이지 않는 정원’(Unseen Garden) 시리즈가 있어요. 이 작업에서 저희는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균열, 머신 비전 모델의 핵심에 인간이 있고, 이런 논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주목했습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정원』(Unseen Garden) 웹사이트은 구식 인공지능 모델을 사용해 식물과 벌레를 분석하며 머신 비전에 대한 집단적 접근 방식의 한계를 살핀 결과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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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4월 말에 인천의 영상 전문 소규모 갤러리인 shhh에서 열릴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뉴 바우하우스에서 라슬로 모호이너지(Laszlo Moholy-Nagy)의 학생들이 미군의 위장 기술을 다룬 『전시 B』(Exhibit B)의 연장선으로, 그래픽 디자인에서 보정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입니다. 저는 이 전시를 위해 새 작품을 계속 만들고 있어요. 몇 가지 강연과 함께 폐막 행사도 마련할 예정이니 꼭 들러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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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안팎』은 어떠셨나요? 크든 작든 『안팎』은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안팎』에서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안팎』은 언제나 여러분의 관심을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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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라픽스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25-15 ⓒ 2024 Ahn Graphic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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