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세계의 안팎을 살피겠다 선언하며 문을 연 『안팎』은종종 이런 질문을 마주하곤 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대화 나눌 사람을 선정하나요?’ 글쎄요. 거창한 기준도 원대한 꿈도 아직은 없습니다.
디자인계의 떠오르는 샛별도, 무대 위에서 춤추는 무용수도, 누구나 익히 아는 글쓴이도 우리에겐 대화를 나누고 싶은 대상이니까요.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들의 안팎을 살피다 보면 어느새 우리에게도 좀 더 분명한 ‘기준’이라는 게 생길 테지요. 모쪼록 『안팎』 2호의 주제는 ‘기준’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비록 그 모양이 희미하거나 때때로 송두리째 흔들리더라도요.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선택을 뒷받침하는 나름의 기준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명확하게 정의 내리고 끝끝내 지켜내기란 쉽지 않아요. 요즘같이 도처에 무수한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죠. 우리는 어떤 삶의 모양을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을까요?
『안팎』 2호에서는 ‘Standard, For a Stable Life’라는 문장과 함께 자신들만의 가구를 만들어가고 있는 스탠다드에이와 ‘기준’의 안팎을 나눕니다.
스탠다드에이
스탠다드에이는 '기준을 지키는 디자인'을 원칙으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 목재 가구를 만드는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다. 2012년 작은 공방에서 시작해 하드우드 목재를 베이스로 한 작업을 꾸준히 그리고 진득하게 이어오고 있는 스탠다드에이는 현재 마포구 서교동, 경기도 파주에 각각 쇼룸과 제작소를 두고 있다. 'Standard is not normal'이라는 모토를 중심으로 한 자체 컬렉션과 비스포크 주문 제작 가구는 특유의 섬세한 디자인과 정제된 미감, 안정적인 내구성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목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2호의 첫 번째 공식 질문이자, 가장 궁금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스탠다드에이가 말하는 가장 ‘정직한’ 가구란 무엇인가요? 구성원 각자가 생각하는 관점도 조금씩 다를 것 같아요.
류윤하(스탠다드에이 대표): 사실 ‘정직한’이라는 문구는 저희가 처음 브랜드 이름을 정할 때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기준’이라는 의미로 스탠다드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데, 한글로 표기하자니 입에 딱 붙지 않았거든요. 스탠다드에이가 만들어진 10여 년 전쯤엔 DIY 가구가 한창 붐일 때였고, MDF를 사용한 힙한 가구들도 많았어요. 그래서 '좀 더 단단하고 잘 만들어진 가구를 ‘기준’으로 삼았으면 좋겠는데, 그걸 어떻게 설명하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정직함’으로 번역을 하게 된 거예요.
'우리가 정직하다.'보다는 '좀 더 기준을 잘 지키고 있다.' 정도의 느낌이었죠. 지금은 그 기준이 어느 정도 안착된 것 같아요. 잘 만드는 팀들도 훨씬 늘었고. 요즘은 그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고, 스탠다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스탠다드에이에서 정의한 스탠다드는 'Standard is not normal'로 표현되기도 했죠. 이 모토를 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류윤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스탠다드’를 ‘정직함’으로 번역하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정확한 단어를 찾던 중에 스탠다드에이의 가구가 하나의 시작점이자 나침반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스탠다드는 보통의 것은 아니다.’라는 문구를 잡은 거죠.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던 오해가 ‘스탠다드 = 보통’이라는 인식이었거든요. 스탠다드는 시작점이지, 어디에나 흔한 보통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창작자는 종종 제작물에서 자신과 닮은 아웃풋을 만들어내곤 해요. 각자 본인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가구가 있나요?
채지원(연구실 실장): 저는 이 질문이 제일 어려웠어요. 가장 저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었는데, 중요한 건 답을 못 내렸어요. 굳이 말하자면 셰이커(shaker) 가구 쪽을 닮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실용적이면서도 검소하고, 또 간결하게 이어진다는 면에서요. 제 취향의 의자를 말한다면 찰스 앤드 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의 LCW 체어를 좋아해요. 스탠다드에이 제품 중에서는 스틸 라운드 테이블을 제일 좋아하고요. 저랑 닮은 가구는 아니지만요.
지금과 같은 브랜드로 볼륨을 키워나가기까지, 컬렉션이나 콘셉트에 대한 연구는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는 편인가요?
류윤하: 저희가 처음 오픈할 때는 일본 브랜드들을 많이 살펴봤어요. 당시에 하드우드로 가구 하시는 분들이 한국에 몇 팀 없었거든요. 예를 들어 지금은 없어진 밀로드, 아직 활동하시는 아이네클라이네 같은 팀이 있었죠. 일본의 경우 트럭퍼니처나 할리우드버디 같은 팀이 있었고요. 그때 일본에는 하드우드 시장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한국도 곧 형성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오사카의 트럭퍼니처도 가보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브랜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어떻게 만들지? 일단 시작하자!' 시작은 그렇게 된 거죠. 영감이라기보다 스탠다드에이라는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기폭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새로운 가구를 만들 때 우선순위로 두는 기준을 두세 가지 키워드로 추려볼 수 있을까요?
류윤하: 완성도와 난이도라는 단어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완성도를 높이면 난이도가 높아지거든요. 그렇다고 무작정 완성도를 높여버리면 계속 만들어낼 수가 없어요. 어느 정도 선에서 컷하지 않으면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서 결국 이걸 팔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려요. 쉽게 말하면 제품에서 작품으로 넘어가는 거죠. 저희 브랜드 내규 중에는 이런 말도 있어요.
“우리의 제품은 잘 만들어짐을 원칙으로 하지만 장인 정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저희는 장인 정신을 추구하지는 않아요. ‘짜맞춤도 안 하면서 가구라고?’라는 태도로 모든 가구를 만들 수는 없어요. 단가도 너무 높아지고, 소비자한테 넘어갔을 때 몇 백만 원이 돼버릴 테니까요. 충분한 튼튼함을 갖되, 어느 정도의 선을 넘어갈 정도로 고난이도 제품을 만들지는 말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디자인을 하면서도 난이도를 계속 고민합니다.
스탠다드에이라는 브랜드와 '나'라는 개인의 삶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나요?
최혜진(브랜드팀 팀장): 저희가 예전에 만든 문구 중에 ‘Standard, For a Stable Life’라는 말이 있거든요.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안정적인 삶을 위한 기준’ 정도가 되겠네요. 스탠다드에이에서 말하는 ‘스테이블한’ 가구는 기본적으로 견고하고, 튼튼하고, 누군가의 삶 한편을 단단하게 지지해 주는 아이템인 것 같아요. 하루의 시작과 마감을 함께하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 브랜드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람이 밥도 잘 챙겨 먹었으면 좋겠고, 건강한 태도로 일을 했으면 좋겠고, 각자 자신의 삶에 애착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기본적인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걸 잘 지키는 삶을 살아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던 오해가 ‘스탠다드 = 보통’이라는 인식이었거든요. 스탠다드는 시작점이지, 어디에나 흔한 보통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